산행

치술령 2020-05-04

몰라! 2020. 5. 5. 11:04

4월30일 하늘억새길 종주 이후 처음에는 모르고 지냈는데

몇일 지나자 피로가 싸였는지 온몸이 나른해지고 힘어 없어지는 것이 그날의 여파인 듯하다

이렇게 가만히 무기력하게 있으면 점점더 축쳐진 상태로 지나게 될 것 같아서

가볍게 몸도 풀겸 가깝지만 다녀 온지 6~7년은 된 듯 치술령으로 가 봤다

 

 

 

 

 

치술령(765m)

[ , Chisullyeong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동면 만화리와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에 걸쳐 있는 산이다(고도 : 765m).

옛날 신라의 눌지 마립간(눌지왕)은 고구려와 일본에 보낸 자신의 동생들을 그리워 하였다.

그래서 충신 박제상에게 자신들의 동생을 데려오라고 시켰다.

그래서 박제상은 맨 처음으로 고구려에 가서 둘째 동생을 데려오고, 곧바로 일본에 가서 셋째 동생을 구하러 갔다.

이때 아내는 남편을 붙잡기 위해 남편을 쫓아갔지만 남편을 태운 배는 이미 떠나고 말았고,

박제상은 셋째 동생만을 돌려 보낸 채 자신은 그 곳에서 혹독한 고문으로 죽는다.

하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아내는 남편이 떠난 바위가 보이는 치술령으로 올라갔다가 몸이 굳어

그 자리에서 굳어 바위가 되었고, 사람들은 그 바위를 남편이 그리워 하는 바위라고 하여 망부석(望夫石)이라고 한다.

 

 

 

 

치술령 산행경로

반용저수지~520봉~갈비봉~치술령~갈비봉~610봉~콩두루미재~425봉~반용저수지

산행거리: 7.5km, 산행시간: 3시간17분, 휴식시간: 10분, 전체 소요시간: 3시간27분

 

 

 

 

치술령 산행지도

 

 

 

 

 



울산광역시 척과리 반용마을 저수지 부근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네비에 검색 할 때는 척과저수지로 나온 것으로 기억 되는데 확실하지는 않다

 

 

 

저수지 윗쪽 계곡으로 들어 가면 된다

예전에 경주시 외동읍 녹동리에서 두어번 치술령에 올랐었고

이 쪽에서 치술령 올라가는 것은 처음이라 등로을 제대로 잘 모른다

 

 

 

여기서 우측 계곡을 건너면 좌측에 곧 바로 들머리가 보인다

 

 

 

들머리에서 부터 좌측으로 계곡을 끼고 평탄한 등로가 열려 있다

 

 

 

계곡을 따라 계속 직진 했어야 했는데

첫 번째 계곡 합류지점에서 우측 계곡으로 들어서는 바람에 뜻하지 않게 520봉으로 올라가게 되었데

계곡따라 갔었더라면 답답했을텐데 경치가 빼어나지는 않아도 조망을 즐길 수 있었다

520봉에서 바라 본 국수봉 하산 때 컨디션 봐서 저기까지 갔다가 은월암으로 하산 할 수도 있겠다

 

 

 

우측 국수봉에서 중앙 옥녀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저 옥녀봉 반대편 산아래 동네에 나의 본가가 있다

 

 

 

치술령 방향 여기서 바라 보이는 곳은 갈비봉 부근이다

 

 

 

520봉에서 갈비봉으로 가는 능선길은 아주 완만한 길이다

 

 

 

 

 

 

 

등로 주변으로 간간이 서있는 철쭉이 눈을 즐겁게 해준다

 

 

 

연초록 숲 꽃길을 걷고 있으니 한결 상쾌하게 느껴진다

 

 

 

갈비봉 도착

범서 남방 방향에서 올라와서 치술령정상에 갔다가

다시 여기로 돌아와서 은을암 방향으로 가야하고 국수봉까지 가고 안가고는 그 이후 상황에 따라 결정 할 것이다

 

 

 

철쭉이 제법 있으나 군락 수준까지는 아니고 그저 심심하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있다

 

 

 

 

 

 

 

 

 

 

 

 

 

 

 

치술령 정상 부근 모습

 

 

 

치술령 정상부 전경

가까이 있지만 여기는 엄청 오랫만에 올라 왔다

마지막으로 다녀간게 아마 6~7년전 여름 쯤 비 내린 날로 기억된다

 

 

 

치술령은 전설에 의하면 "박제상 사후 어느 겨울밤,

눌지왕이 잠을 청하는데 어디선가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결국 그 소리가 난 곳을 찾았는데 그곳이 지금의 치술령 중턱이었다.

신하들을 시켜 무덤을 파게 했는데 그곳에는 마치 아이의 모양을 한 금동불상이 있었다.

왕이 불상을 안으니 울음을 그쳤다. 왕은 불상을 가지고 환궁했고, 그 무덤을 만든 자를 수소문 했는데,

그 주인공은 다름 아닌 근처 마을의 금슬 좋은 부부였다.

어머님을 위해 송이버섯을 따서 반찬을 만들어 드렸더니, 어머님은 잡수시지 않고,

그 버섯들을 손자인 웅이에게만 먹이는 것이었다.

부부는 어머님은 돌아가시면 끝이라 의논하고는 웅이를 없애버리기로 하고 산 중턱에 묻어 버렸다는 것이다.

왕은 너무나 순박한 서민들의 애환을 한눈에 보고 이 산을 치술령()이라고 이름 지었다."

라고 전하는 데서 지명의 유래를 짐작할 수 있다.[네이버 지식백과]

 

 

 

당시에 왕이 말을 매었던 자리를 마등이라고 전하며,

웅이가 묻혔던 자리에 웅치사()란 절을 지어 오랫동안 웅이의 넋을 위로 했다고 한다.

치()는 솔개 등의 새를 나타내는 단어이고, 술()은 수리,

즉 높은 산을 뜻하므로 치술령은 '새가 사는 높은 산'을 의미한다.

박제상의 부인은 두 딸을 데리고 치술령에 올라 일본에 간 남편을 기다리다 죽으니

그 몸은 돌로 변하여 망부석이 되고, 그 영혼은 날아가 숨었는데 그곳을 은을암()이라고 한다.

이곳에 사당을 짓고 그 뜻을 기리는 제를 봉행하게 한 곳이 치산서원이라고 한다.

『조선지형도』(울산)과 『조선지지자료』에는 모두 치술령으로 기록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신모사지 비석 뒷면

읽어 보는데 아는게 별로 없다 보니 제대로 해석이 안되는 부분이 많았다는~~~

이래서 사람은 무조건 많이 배워야 하는 것이란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정상에서 기웃 거리다 바로 아래 망부석 쪽으로 내려가 본다

 

 

 

눌지왕은 각각 왜와 고구려에 볼모로 잡혀간 두 아우인 미해와 보해를 구하고자 했다.

박제상이 명을 받들고 고구려에 가서 보해를 구해 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왕이 미해를 그리워하자, 박제상은 집에 들르지도 않고 곧장 왜로 향했다.

뒤늦게 소식을 들은 아내가 바닷가로 갔으나 제상은 배를 타고 손만 흔들었다.

박제상은 왜왕에게 신임을 얻은 뒤 미해를 먼저 탈출시켰다. 화가 난 왜왕이 혹한 심문을 하며 회유하려 하지만

박제상이 굴복하지 않자 화형시켰다. 미해가 무사히 신라에 당도한 후 눌지왕은 제상의 아내를 국대부인으로 삼고

그의 딸은 미해공의 부인으로 삼았다. 이후 부인은 치술령에 올라가 통곡하다가

치술신모가 되어 왜로부터 신라를 지켰다. 또 몸은 망부석이 되고 혼은 새가 되어 날아갔는데,

그곳을 비조라 하고, 새가 숨어든 절의 이름은 은을암이라 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망부석에서 바라 본 울산 방향

간밤에 내린 비 때문에 습기가 많은 것인지

아니면 미세먼지 때문인지 하여튼 대기 상태가 좋지 않아서

여기서 보인다는 울산 앞바다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정상부근에는 따가운 볕을 피해 쉴 곳이 마땅치 않아서

헬기장 쪽으로 내려가다 소나무 그늘에서 잠시 쉬어 가기로 한다

 

 

 

잠시 휴식 후 헬기장으로 내려서서 뒤 돌아 본 치술령 정상

정상 아래 숲 사이로 희미하게 망부석이 보인다

 

 

 

당겨 본 망부석

 

 

 

조금전 마추쳐 지나 갔던 산객 두사람이 망부석에 올랐다

 

 

 

갈비봉으로 돌아와서 은을암 방향으로 간다

 

 

 

갈비봉에서 은월암 방향으로 한동안 완만한 등로가 이어지는가 싶으면

 

 

 

이내 급경사 내림길이 한 동안 제법 지루하게 이어진다

 

 

 

콩두루미재 도착

영남알프스 종주산행 휴유증인지 걷기가 싫어지면서

여기서 은을암, 국수봉까지 갈까 말까 망설이게 되고

 

 

 

잠시 망설이다 하산 하기로 마음먹고 좌측 척과 반용마을 방향으로 간다

 

 

 

척과 반용마을 방향으로 300~400미터 쯤 이동 후 바라 보이는 국수봉

 

 

 

당겨서 본 국수봉 그리고 정상 좌측 아래에 은월암이 보인다

산행 어플에서 지도을 확인해 보니 여기로 하산하면 출발지 계곡 상류로 내려가게 되어서

저수지부근으로 바로 내려 갈 수있는 능선을 찾아 가기 위해서 콩두루미재로 되돌아 가기로 한다

 

 

 

콩두루미재에서 임도옆 능선 등로을 따라 간다

 

 

 

콩두루미재에서 두번째 봉우리에 이정표가 있고

여기서 직진하면 은을암 국수봉으로 갈 수 있다

나는 컨디션상 거기까지는 무리 같아서 좌측 능선을 따라 저수지을 찾아 간다

 

 

 

가끔씩 제법 세찬 바람이 불때면 온통

송화 가루가 뽀얗게 휘날리기도 하지만 

여유롭게 오월의 신록을 만끽 하면서 시원한 숲길을 즐긴다

 

 

 

저수지로 내려서다 보면 풀이 거의 자라지 않는 이런 묘지 세곳을 지나게 된다

 

 

 

세번째 묘지을 지나 30여미터쯤 아래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내려서야 저수지로내려 갈 수 있다

 

 

 

자칫 하면 무심코 지나 칠 수 있을 정도로 등로 구분이 잘 안된다

아쉬운 마음에 썩은 나무가지 몇개을 쌓아 보다 별 도움이 되지 않을 듯 해서 그만두었다

 

 

 

갈림 길에서 약간의 경사면을 타고 내려 오면

좌측 전봇대 쪽으로 내려 오면 바로 출발지가 나오면서 산행은 종료된다

 

 

 

 

높은 산 정상은 아직 봄이 멀었지만

산 아래에는 한낮 기온은 제법 덥게 느껴져서 그늘을 찾게된다

코로나 때문에 정부 방침에 따른다고 회사에서도 행선지와 동선 파악등으로 은연중에 신경을 많이 쓰는터라 

멀리 떠날 수 없었지만 6일 연속으로 쉬면서 오랫만에 나만의 시간을 가져 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