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시 산외면 보두산~낙화산~중산~석이바위봉
산행거리 8km
지도에있는 들머리 엄광사는 이사가고 없고 도로 공사로 인해 절개지 경사면을 올라가야 등산로가 나온다
그리고 오늘은 년초 소백산 산행 후 모처럼 동행이 한 사람 늘었다
뒤에 보이는 봉우리가 보두산이다
오늘 6백미터 내외의 산들로 산행거리도 짧고 표고차 또한 심하지 않아서 아주 수월한 산행 코스다
지도상의 엄광사는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고 등산로 입구도 찾기가 조금 애매 하지만 절개지 경사면 배수로로 올라 가면 된다
엄광저수지 부근에 주차를 한 후 들머리로 향한다
저수지에서 50여 미터 떨어진 삼거리에서 좌측 길로 들어서서 도로 절개지 배수로를 따라 올라가면 된다
보두산으로 올라가는 코스는 아기자기한 암릉으로 나름 괜찮은 듯 하다
여름보다는 겨울에 보는 암릉이 좀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올망졸망한 바위구간도 지나고
제법 큰 암릉구간은 우회해서 올라 간다
6개월 만의 산행 때문인지 걷는게 영 신통치 않다
그 동안 지리산 둘레길 전 구간 완주를 눈 앞에 두고 있다는데 등산과 둘레길 걷는 것은 차이가 있나 보다
전망바위에 먼저 도착 한 자의 여유를 한껏 만끽 하고있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오르기 시작
나름 괜찮아 보이는 암벽도 있고
우측으로는 희미하게 밀양 시내가 보이고 가운데 높은 봉우리가 비학산 이다
이건 성우가 멋있다고 해서 찍었다.........ㅎㅎ
일단 여기서 쉬기로 하고......
영언이는 상당히 힘든 모양이다
지리산 둘레길 전 구간 완주를 눈앞에 두고 있는데 등산 하는 것 훨씬 힘든가 보다
여기서 태화루 시원하게 들이키면서 한참을 쉬었다
아주 짧은 밧줄도 통과 하고
여기가 보두산(보담산) 정상(561m)이고 정상석은 없다
날씨가 제법 후덥지근 하지만 소나무가 우거진 등산로라 거의 전 구간이 숲속을 걷게 된다
무거워 보이는 저 발길.........
풀린 저 동공과 거의 유체이탈 된듯 한 뀅한 표정 야!~~정신 챙기라
우째든 낙화산 정상 도착
낙화산의 유래는
밀양지명고(1994밀양문화원)에 의하면, 밀주구지에 이르기를 옛날에 세 당상(堂上)과 두 사인(舍人), 여덟 만호(萬戶)의 벼슬자리가 한 시대에 나오는 곳이라 하여, 가곡(嘉谷)이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하였으나 실제 그런 벼슬을 한사람이 나왔는지는 알 수 없다고 하였다. 비록 한 시대 동시에는 몰라도 근세의 인물들은 그 이상의 벼슬도 많이 출세한 마을이다. 수 백 년 흐른 세월에 가곡(嘉谷)은 가곡(佳谷)으로 변하여 외가곡, 내가곡, 길곡, 신촌 등 네 개의 자연부락으로 형성되어 있는 따뜻한 마을이다.
마을의 배산(背山)을 북산(北山)이라 하는데 이 산 9부 능선에 낙화암(落花巖)이 있어 낙화산이라 부르기도 한다는데, 25번 국도에서 마을 뒷산을 바라보면 과연 하늘 닿기 몇 십 보 아래 깎아지른 바위절벽이 병풍을 두르고 있다. 이 바위의 높이가 작게 잡아도 30m는 됨직한데 여기에 꽃이 떨어졌다고 하여 낙화암이 되었다니, 우리가 널리 알고 있는 백마강의 낙화암과는 구분이 된다.
여기에서 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꼭 42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라 말엽에 입촌하여 터를 잡은 밀성박씨 문중이 대를 이어 살아온 이 마을에도 그해 임진왜란은 비켜가지 않았다.
당시의 한양으로 가는 첩경인 영남대로에 인접해있는 이 마을에 왜적이 침범하자, 박희량의 부인 여흥 민씨는 마을의 부녀자 두 사람과 함께 마을 뒷산으로 피신하여 산마루 가까이에 있는 바위틈에 숨었으나, 굶주린 이리떼와 같은 왜구가 맨손으로 피난 가는 양 같은 여인들을 쫓아오는 목적을 직감할 수 있었다. 왜구들이 바위를 기어오르자 민씨부인은 더는 피할 수 없음을 알고, 더러운 왜구의 손에 잡히기 전에 스스로 천길 벼랑 아래로 뛰어내린 것이다.
이리하여 이 바위가 낙화암이 되었으니, 비운의 의자왕이 망국의 한을 품고 678년 백제의 막을 내릴 때, 왕을 섬기던 삼천궁녀가 뛰어내린 부여의 낙화암엔 눈물 젖은 꽃잎이 떨어졌지만, 밀양의 낙화암엔 정절부의 선비정신이 나비처럼 꽃비로 내려앉은 것이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고을 부사의 보고에 의하여 나라에서 내리는 정표(旌表)가 내려오자 北山아래 려각(閭閣)을 세웠다. 세월이 길어 여각이 허물어지자 마을 서쪽으로 자리를 옮겨 재건한 정려각이 화재로 소실되고, 1946년 후손들의 정성으로 다시 복원되어 국도 25호선 큰길가에서 낙화암을 지키고 있다.
낙화산 정상에서 조금은 이른 듯 한 만찬을 느긋하게 즐기고 나서 중산으로 향한다
니들 왜 그러고 있냐?
아~하!
내가 니들을 좀 아는데
점심 먹을 때 먹는 것 가지고 서로 먹을려다 기분 상한 일이 있었는 가보네 분위기가 딱 그 분위기네...........ㅎㅎㅋㅋ
낮은 봉우리를 올랐다 내려 갔다는 몇 번 반복 하고 나서........
또 다시 전망 좋은데서 시원 한 바람에 땀을 식히면서 이쁜척 하랬더니 저러고 있다
서서히 나타나는 저질체력
표정은 거의 히말라야 등정한 것 같다
정신줄 추수리고 한장 더
중산만 지나면 중산2봉(석이바위봉)가는 길은 거의 평지 수준의 완만한 길이다
중산 정상석
다정한 포즈로?
엥! 내가 못 본 사이 화해라도 했냐?.........ㅋㅋ
하산 길 숲속에 있는 돌탑
한번 쌓아 보겠다고 돌 두개를 집어 들더니 어쭈구리 금세 성공 해 버린다
이쪽 돌들이 자석 성분이 많이 포함 된 것 아닌지.........
본인 실력이라면 대단 능력자이고 아니면 우연한 재수거나 둘 중 하나겠지............ㅎㅎ
소나무 숲속에서 꼭 한 장 찍어 보라고 해서 찍긴 했는데 역시 기대에 못 미친다
산에서 다 내려 왔는데 묵혀진 듯 한 밭둑에서 산딸기 따느라 한 참을 보냈다
두 녀석이 내려 갈 생각은 하지 않고 30여분은 그러고 있더니 영언이가 획득한 딸기 들고 당당히 내려오고
성우는 아직도 움직일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아 냅다 버려두고 주차 해놓은 곳으로 향한다
낙화산은 높지 않아서 가볍게 산행 하기엔 아주 좋은 곳인 듯 하다
단지 큰 계곡이 없어서 한 여름 산행지로는 조금 아쉬울 듯 하지만 아기자기한 산세와 조망은 나름 괜찮다
그 동안 녀석이 뜻 하지 않게 몸이 안 좋아서 함께 할 수 없었는데 거창 우두산 산행 후 거의 한달여만에 함께 한 산행이었다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 되기전 당일 일정으로 지리산 자락을 한 번 헤매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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