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산행은 합천 해인사로 유명한 가야산이다
오늘 산행 코스는 백운동 주차장~백운동 탐방지원센타~만물상~서성재~칠불봉~우두봉~해인사 코스로
거리는 약 9km로 비교적 짧지만 만물상의 빼어난 경관은 어디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오늘 동행은 회사 선배 한분과 나 이렇게 둘이다
[개설]
주봉인 상왕봉(象王峯, 1,430m)과 두리봉(1,133m)·남산(南山, 1,113m)·단지봉(1,028m)·남산 제1봉(1,010m)·매화산(梅花山, 954m) 등 1,000m 내외의 연봉과 능선이 둘러 있고, 그 복판에 우리 나라 3대 사찰 가운데 하나인 해인사와 그 부속 암자들이 자리하고 있다.
[자연환경]
가야산 일대에서 해인사가 있는 치인리에 모이는 물은 급경사의 홍류동(紅流洞) 계곡을 이룬다. 그리고 동남방으로 흘러 내려와 가야면 황산리에서 낙동강의 작은 지류인 가야천이 된다. 가야산을 만드는 산맥을 보면,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이 덕유산(1,614m)에 이르러 원줄기는 남쪽의 지리산으로 향한다.
한편, 하나의 지맥이 동쪽으로 뻗어 대덕산(大德山, 1,290m)·수도산(修道山, 1,316m)과 단지봉(丹芝峯, 1,327m)을 거쳐 가야산에 이르러 크게 산세를 이룬다. 동쪽과 남쪽으로 낙동강 본류와 황강(黃江)을 굽어본다. 가야산 상왕봉 정상에서 바라보면 서쪽으로는 덕유산이, 남쪽으로는 지리산이 멀리 보인다.
가야산은 예로부터 ‘조선팔경’ 또는 ‘12대명산’의 하나로 꼽혀왔다. 1966년가야산 해인사 일원이 사적 및 명승 제5호로 지정되고, 1972년 10월에는 다시 가야산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명칭유래]
가야산은 선사시대 이래 산악 신앙의 대상으로서, 고려팔만대장경판을 간직한 해인사를 품에 안은 불교성지로서, 그리고 선인들의 유람과 수도처로서 이름을 떨쳐왔다. 그런 이유로 가야산은 민족의 생활사가 살아 숨쉬는 명산이자 영산(靈山)이라 일컫을 만하다.
가야산의 이름은 가야산 외에도 우두산(牛頭山)·설산(雪山)·상왕산(象王山)·중향산(衆香山)·기달산(怾怛山) 등 여섯 가지가 있었다고 한다(新增東國輿地勝覽 卷30). 《택리지》에 가야산은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을 떠나 있으면서도, 그 높고 수려함과 삼재(三災 : 旱災·水災·兵禍)가 들지 않는 영험함을 말하여 명산으로 불렸다.
가야산 지명의 유래에 관하여는 두 가지의 설이 있다. 먼저의 주장은 가야산이 있는 합천·고령 지방은 1,2세기 경에 일어난 대가야국의 땅으로, 신라에 멸망한 뒤로 처음에는 대가야군으로 불렸다. 따라서, 이 산이 대가야 지방을 대표하는 산이며 가야국 기원에 관한 전설도 있는 까닭에, 옛날 가야 지방이라는 역사적 명칭에서 가야산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른 주장은 인도의 불교 성지 부다가야(Buddhagaya) 부근 부처의 주요 설법처로 신성시되는 가야산에서 이름을 가져 왔다는 것이다. 또, 이 산의 정상부가 소의 머리처럼 생겼고, 오랜 옛날부터 산정에서 행하여지는 산신제의 공물을 소에 바치고 신성시하여 왔다.
즉 불교가 전래되기 이전의 이름은 우두였다. 그런데 불교가 전래된 뒤 범어(梵語)에서 ‘가야’는 소를 뜻하고, ‘가야산’은 불교 성지이므로 ‘가야산’이라는 이름으로 정착되었다고 보는 것이 또 다른 주장이다.
이와 관련하여 주봉 상왕봉의 ‘상왕’은 《열반경》에서 모든 부처를 말하는 것으로, 이 또한 불교에서 유래한 것이라 한다. 결국 ‘가야산’이라는 명칭은 이 지방의 옛 지명과 산의 형상, 산악 신앙, 그리고 불교 성지로서의 다양한 의미를 함축한 것이다.
가야산 정상 우두봉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경상북도 성주군 가천면과 수륜면에 걸쳐 있는 산.
산행 안내도
오늘 산행은 백운동 주차장~만물상~상아덤~서성재~칠불봉~상왕봉~해인사 코스로 약 9.3km
산행 시간 6시간30분( 휴식 시간 1시간25분 포함)
백운동 주차장에 주차 후 가야산 국립공원 안내도 뒤쪽길로 조금 올라가면 가야산 탐방 지원센타가 나온다
탐방 지원센타 가기전 수많은 시그널이 매달려 있다
오늘 함께 산행 하는 회사 선배로 거의 20년을 함께 동고동락 했다고 봐도 무방 하다
가야산 탐방 지원센타에서 오른쪽 계곡으로 가면 용기골로 용기사지와 백운사지가 있고 우리는 왼쪽 만물상 족으로 방향을 잡는다
한참을 올라가다 뒤돌아 보니 백운동 주차장과 좌측으로 호텔이 보이는데 호텔 이름은 모르겠다
예전에 하산 후 저기 호텔 사우나에서 뜨끈뜨끈한 물로 피로를 풀었던 기억이 난다
용기골 건너 동성봉 방향 동장대 능선
당겨서 본 주차장 방향
오늘은 주변 경치 감상 하느라 쉬엄쉬엄 걷는다
비스듬히 아슬아슬해 보이는 바위
가야산 등산의 백미는 만물상 코스다
만물상 코스는 가야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고 38년 만인 지난 2010년 개방되어 수많은 등산객들의 사랑을 받는다
진행 방향 좌측 심원골 건너편 그리움리지라고 알고 있는데 정확한지는..............
옛 산성의 흔적
《동국여지승람》의 기록에 의하면, 가야산신 정견모주는 천신 이비가지(夷毗訶之)에 감응(感應)되어 대가야왕 뇌질주일(惱窒朱日)과 금관국의 왕 뇌질청예(惱窒靑裔)를 낳았는데, 뇌질주일은 대가야의 시조 이진아시왕(伊珍阿豉王), 뇌질청예는 금관국(혹은 本伽倻라고도 함) 시조 수로왕의 별칭이라 하였다. 김수로왕의 건국 전설에는 가야의 북동 경계를 가야산으로 하였다는 기록도 있다.
가야산 만물상은 바위 하나하나가 모여 만들어 내는 만가지 형상을 보여 준다
이 근처 어딘가 촛대바위가 있다는데 어느 것인지 알아보기가 쉽지 않다
만물상을 내려다 보면서 여기 숨겨진 전망대에서 막걸리 한잔 하는 이순간 만은 이세상 그 누구도 부럽지 않았다
같은 만물상이라도 시간과 햇볕에 따라 분위기가 시시각각 변한다
상아덤으로 향하다 뒤돌아 본 만물상 코스
만물상을 배경으로 한장
상아덤으로 향하다 돌아 본 만물상
상아덤 부근에서 바라본 칠불봉
상아덤 도착
서성재 부근의 붉게 물든 단풍
서성재에서 칠불봉과 상왕봉 쪽으로 가는 길
칠불봉으로 오르다 내려다 본 서성재 방향
아래서 올려다 본 칠불봉
죄 지은 사람은 조심 해야 할듯.........
산행 하다 벼락 맞아 죽었다고 말하기는 좀 거시기 할 듯..........
칠불봉 오르는 마지막 급경사 계단 구간
계단 최상단에 위치한 고사목 마치 하늘로 올라가는 대문인 듯 하다
칠불봉 높이는 1433m 이다
칠불봉에서 인증샷
칠불봉에서 바라본 상왕봉 1430m 이다
칠불봉에서 내려다 본 서성재 방향
상왕봉에서 바라 본 칠불봉
상왕봉에서 내려다 본 해인사 방향 봉천대 여기서 하늘에 제를 지냈다고 한다
오늘 날씨가 좋아 저 멀리 희미하게 지리산 천왕봉이 보인다
가야산의 정상은 상왕봉(1430m) 이다
그런데 수천년 동안 가야산에서 가장 높은 곳이 상왕봉 이었는데 현대 문명의 발달로 칠불봉이 3m 더 높은 것으로 측량되었고
상왕봉은 합천군에 칠불봉은 성주군에 있다보니 그래서 가야산 정상을 칠불봉으로 바꾸자고 하는 성주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상왕봉에서 내려와 해인사로 향하다 쳐다 본 상왕봉
해인사가야산은 임진왜란 때 왜군이 들지 않았으나 해인사는 임진왜란 후에 7차의 대화재를 겪어, 50여 동의 해인사 건물들은 대부분 2백 년 이내에 중건된 것들이다. 그러나 불가사의하게도 민족의 보물인 고려팔만대장경판과 이를 봉안한 장경각만은 한번도 화를 입지 않고 옛 모습을 고이 간직하고 있다.
해인사는 가야산의 품에 안김으로써 거찰(巨刹)이 되었고, 가야산은 해인사를 옷자락 속에 둠으로써 더욱 명산·영산의 이름을 얻었다.
최치원이 가족을 데리고 들어가 살던 곳을 치원촌(致遠村)이라 하였는데, 후에 치인촌(治仁村)이 되고 다시 지금의 치인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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