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운문산 2018-01-28

몰라! 2018. 1. 31. 02:14

새해들어 한달 동안 주변에 많은 일들이 일어 났었다

집에 편찮은 분이 계시다 보니 서울에 오르락 내리락 하기를 수차례 다음 주중에도 한번 다녀 와야 하고

그러는 와중에 집사람까지 편도염으로 일주일 정도 입원 해었고 물론 지금은 퇴원 했지만~~~

또 지난주에는 근처 사시던 둘째 고모가 돌아 가셨고~~~~

이제는 손위 처남까지 몇 일전에 일하다 부딪혀서 갈비뼈 금이 가서 입원 했다는데 아직 찾아 뵙지 못했고

어째 연초부터 융단폭격을 먼저 맞고 시작 하는 느낌이다

이와중에 산꼭데기 올라 션~한 찬바람 실컷 맞으며 잠시 모든 것 잊어 버리고자 가까운 곳으로 발걸음 해 봤다




운문산

높이 1,188m. 태백산맥의 지맥에 솟아 있으며,

특히 북쪽 천문지골로 내려가는 계곡은 수림이 울창하게 덮인 심산 계곡을 이룬다.

북쪽 사면 아래에 운문사(雲門寺)가 있고, 서쪽 사면 아래에는 고찰인 석골사(石骨寺)가 있다.

운문사는 560년(신라 진흥왕 21)에 신승(神僧)이 창건하고 608년(진평왕 30) 원광법사가 중창했으며,

석골사는 신라 때 창건한 것이나 현존하는 건물은 6·25전쟁 이후에 지은 것이다.




산행경로

석골사 주차장~정구지바위~얼음굴~함화산표지석~운문산정상~범봉~억산~사자바위봉~수리봉~석골사 주차장 원점회귀

산행거리(GPS) 약 13.5km 산행시간 8시간 05분 (휴식 시간 1시간40분 포함)

 

 

 

운문산 산행지도 

 

 


 

  

 



오래 전부터 스님들의 수도처로 이름난 사찰, 석골사 *
석골사는 경상남도 밀양시 산내면 운문산에 자리잡은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 통도사의 말사이다.

560년(신라 진흥왕 12) 비허(備虛)가 창건했다고도 하고 773년(혜공왕 9)에 법조(法照)가 창건했다고도 한다.

비허가 작은 암자를 짓고 보양(寶壤)과 서로 왕래하며 수도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하므로, 비허가 절을 창건하고 법조는 중창한 인물로 추정된다.

태조 왕건(王建)이 고려를 건국할 때 경제적인 도움을 많이 주어, 고려 건국 후에는 암자를 9개나 거느릴 정도로 발전하였다.

한때 석굴사(石窟寺) 또는 노전사(老澱寺)라고도 불렀다. 1592년(조선 선조 25) 임진왜란 때 의병들이 활약하던 곳이었으며,

1753년(영조 11) 함화(含花)가 중창한 뒤 오랫동안 명맥을 이어오다가 1950년에 불에 탔고, 1980년대에 복원하여 오늘에 이른다.




석골사에 전하는 전설 및 이야기 *
석골사에는 주지와 상좌에 얽힌 전설이 전한다.

옛날 주지와 상좌가 이 절에 머물렀는데, 상좌의 인품과 학덕이 주지보다 높았다.

이를 불쾌하게 여긴 주지는 지팡이로 마법을 걸어서 상좌를 강철이로 변하게 하였다.

강철이란 독룡(毒龍)으로 지나가기만 해도 초목이 말라죽는다는 괴물이다.

강철이로 변한 상좌는 억울함을 참으면서 열심히 불도를 닦았다.

1년 뒤 강철이는 옥황상제에게 하늘로 오르게 해달라고 부탁했으나 거절당하자, 화를 내고 몸부림을 쳐서 번개가 번쩍이고 우박이 떨어졌다.

그 바람에 인근의 농작물이 죽었고, 이후 매년 보리가 익을 무렵이면 강철이가 몸부림을 쳐서 인근 농작물에 피해를 주었다고 한다.




운문산으로 오르다 바라본 수리봉

특별히 이변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저기로 하산하게 될것이다

이쪽 등산로는 도중에 하산 할 수있는 길이 많기 때문에 각자 체력에 맞게 산행시간을 다양하게 조절 할 수있다




요즘 추운 날씨가 계속 이어져서

추울까 봐서 단단히 챙겨 입었는데

일요일 날씨가 풀려 챙겨 입은 것이 오히려 불편~~~

앞뒤로 보이는 사람이 없기에 잽사게 해결 했더니 금새 날아 갈 듯이 가벼워진 느낌~~~~ㅎㅎ




정구지 바위에서 계곡을 따라 가면 상운암을 거쳐 운문산 정상으로 가지만

우리는 여기서 우측으로 방향을 틀어서 얼음굴 방향으로 급경사면으로 올라간다


오랜 옛날 마고할멈이 정구지를 앞치마에 담은 채

산길을 가다가 잠시 이 바위 위에서 쉬었는데

그중 일부를 흘려버리는 바람에 지금까지도 바위에 정구지가 난다는 전설 전해온다.








4~5년전만 하더라도 이쪽으로 산행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시피 했었는데

지금은 제법 알려져서 곳곳에 리본이 붙여져 길 찾아 가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다

다리 짧고 체격이 있는 사람은 지나가기 조금 어려운 곳~~~~




얼음굴

거대한 바위 아래 얼음굴이 있는데 오늘은 그냥 통과 하기로~~~

석골사가 처음 세워질 당시에는 석굴사였다는 점을 생각할 때 이곳은 오래 전부터 스님들의 수도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사진 아래 빨간 리본이 매달려 있는 곳이 얼음굴




건너편 억산




멀리서 봐도 금방 알아 볼 수있는 억산




사진 가운데 멀리 보이는 문바위




내려다 보이는 원서리 들판

가을부터 비 다운 비는 한번도 내리지 않는 가뭄에 바짝 말라 버린 하천

길게 이어진 제방 둑이 여기가 하천이라는 것을 가리키고 있다




전망바위에서 내려다 본 원서리




바로 앞쪽으로 구천산~정승봉~실혜산~정각산




함화산이라고 정상석이 있지만

운문산 정상 바로 아래에있는 곳이라 산이라 부르기에는 부적절한 듯








정상부근에는 잔설이 제법 남아 있고~~~




운문산정상

운문산은 운문사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560년(진흥왕 21)에 창건된 운문사는 고려 937년(태조 20)에 태조가 운문선사라는 사액을 내렸고,
화랑도와 낭도에게 세속 오계를 가르친 원광 국사와 삼국유사를 지은 일연 머물렀던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도래재를 중심으로

좌측은 천황산 우측은 구천산~실혜산




가지산




억산 방향




억산은 동봉과 서봉으로 나누어진 ‘깨진 바위’로 불리는 단애가 있는데,

용을 꿈꾸던 이무기가 도망치다가 꼬리로 내려쳐 봉우리가 두 갈래로 나누어졌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운문산 정상에서 사방을 구경 하다 억산 방향으로 향한다

정상에서 조금 내려서자 눈이 얼어 빙판을 이루고 있어서

그냥 갈까 망설이다 안전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아이젠 착용



암릉구간

짧은 암릉구간이 아쉬워 

아쉬운릿지라고 부르기도~~~~




조금 더 가면 로프가 나오는데

상부에서 로프 상태를 보고 난후 영 미덥지 못해서 우회해서 통과

반대로 로프를 타고 올라 가는 사람은 아무것도 모르고 올라 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운문사가 내려다 보인다








우측 억산에서 사자봉~문바위~북암산으로 이어지는




범봉(966m)은 운문산에서 억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한 가운데 자리잡은 봉우리다

영남알프스의 명산인 억산(944m)보다 약간 높지만 평범한 모습이라

지척에 있는 운문산·억산의 명성에 가려 경유지 이상의 대접을 받아본 적이 없다




몇해전 정상석 밑 시멘트 부분에

휴대폰을 떨어떠려 액정이 아작난 적이 있는데

아마 여기 올때 마다 그 기억은 날 듯~~~ㅎ




삼지봉 부근에서 바라 본 억산




산행내내 급 할 것 없이 느긋하게 걸었더니

어느듯 하루 해가 서서히 기울어 가는 시간이 되었다




억산에서 바라 본 운문산




억산(億山)

경상북도 청도군 금천면 박곡리와 경상남도 밀양시 산내면 원서리의 경계에 있는 산.

억산[954m]이라는 이름은 하늘과 땅 사이 수많은 명산 중의 명산이라는 뜻의 억만지곤(億萬之坤)에서 유래하였다.
억만산(億萬山) 또는 덕산(德山)으로 불리기도 한다.












억산은 동봉과 서봉으로 나누어진 ‘깨진 바위’로 불리는 단애가 있는데,

용을 꿈꾸던 이무기가 도망치다가 꼬리로 내려쳐 봉우리가 두 갈래로 나누어졌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억산에서 사자봉 지나고

수리봉으로 가던 중 조망처에서 바라 본 문바위




오늘 산행의 마지막 봉우리인 수리봉에서~~~



수리봉에서 주차장까지 가는 길은

쉼 없이 내려가는 급경사의 연속이라 보면 적당 할 듯

 

 

 

매서운 추위가 이어지다 모처럼 날씨가  좋은 일요일 

자주 다녀 새로움은 없었지만 익숙한 산에서 즐거웠던 산행

복잡하고 정신 사나울때 산에 오르고 있노라면 

힘들어서 모든 것 잠시 잊어 버리게 되는~~~

그래서 산을 좋아 하는 것인지도~~~


어디서 본 듯한

"걱정을 한다고 걱정이 해결되면 걱정이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