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청수우골~시살등~죽바우등~체이등~함박등~영축산~신불재~원점회귀

몰라! 2015. 9. 19. 22:40

오늘 산행은 청수우골~시살등~죽바우등~체이등~함박등~영축산~신불재~신불산휴양림 하단지구를 거쳐 출발지로 되돌아오는 원점회귀 코스다

오늘 동행은 회사 동료 두사람과 함께 가는데 두 사람 모두 산행 경험이 얼마 안되어서 14km거리라고 하니 조금은 부담 스러워 하는 걸 쉬운 산행길이라고

걱정 말라고 일러 줬더니 다소 안도 하는 눈치다

개인적으로 오룡산에서 신불산까지 이어지는 이 쪽 암벽과 능선길을 무척 좋아해서 자주 찾게 되는 것 같다

개인 차량을 이용 한다면 청수골 펜션 앞쪽에 있는 신불산휴게소 식당 주차장을 이용 하면 용이 하다 단 주차장 이용료 3,000원이다

 

산행거리 약 14km

소요시간 7시간45분(순수 산행시간 5시간40분)

 

 

 

시살등 이곳은 임진왜란과 연관된 스라린 이야기가 전해 오는 곳이기도 하다

시살등은 활의 등처럼 부드러운 흙봉우리 산으로 시살등이라는 이름은 임진왜란때 의병들이

단조성에 거점을 두고 왜군과 싸우다가 성을 빼았기자 마지막으로 소등처럼 생긴 이 시살등에서

왜군과 마지막 항전을 하면서 화살을 많이 쏘았다는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산행 안내도 지도상에 따로 표시는 없다

 

 

 

 

 

청수우골 계곡을 따라 능선에 올라서니 출발때 우려 하든 운무가 통도사 쪽으로 찧게 끼여 전혀 보이지가 않는다

 

 

 

이쪽 능선의 묘미는 깍아 지른듯 아찔한 급경사 암벽이 신불산까지 연이어 지는 것을 조망 하는 것인데 운무로 볼수가 없다

 

 

 

죽바우등에서 바라본 영축산 방향 동쪽 사면에만 운무가 잔득있고 서쪽 배내골측은 운무가 전혀 없다

 

 

 

체이등으로 가다 뒤돌아 본 죽바우등

 

 

 

 

 

 

 

앉아서 잠시 쉬는 사이 운무가 걷히고 있다

 

 

 

영축산 정상 부근은 아직도 운무에 가려 있지만 그나마 다행이다

 

 

 

 

 

 

 

 

 

 

 

 

 

 

 

어느듯 가을이 성큼 다가온듯 하다

 

 

 

저 멀리 억새밭 사이로 단조성터 흔적이 희미하게 보인다

 

 

 

오늘 이 쪽 능선에는 날개미 천지다

 

 

 

[명칭유래]

영축산은 석가모니가 화엄경을 설법한 고대 인도의 마가다국에 있던 산 이름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자 표기는 '영축산(靈鷲山)'과 '취서산(鷲栖山)' 두 가지로 표기되지만 이에 대한 한글 표기는 영축산·영취산·축서산·취서산 등으로 표기되어 있어 혼동을 불러 일으켰다. 이 같은 현상은 한자 '취 또는 축(鷲)' 자에 대한 한글 표기의 문제에서 비롯되었다. 일반 옥편에서는 '독수리 취'라고 표기되어 있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축'으로 발음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동쪽 사면은 깎아지른 듯 급경사이고 서쪽 사면은 상대적으로 완만한 경동 지형을 이루는 영축산은 산정이 화강암으로 된 예리한 톱니바퀴형으로 되어 있어 멀리서 보면 하나의 성채 같다. 영축산은 가지산에서 남쪽으로 뻗은 줄기가 능동산에 이르러 두 줄기로 갈라지는데, 남서진하는 줄기는 밀양의 천황산과 제약산으로 이어지고, 동쪽으로 내려와 배내고개를 건너 남진하는 줄기는 간월산과 신불산을 지나 영축산의 첫머리에서 높이 솟구쳐 계속 남쪽으로 이어진다.
영축산에서 신불산으로 이어지는 정상은 펑퍼짐한 산으로 광활한 능선의 억새밭이 천국을 이루고 있다. 산록에는 곳에 따라 산정으로부터 기계적 풍화 작용에 의해 부서지고 떨어진 애추(자갈더미)가 형성되어 있고, 그 아래로 깊은 골짜기가 이어진다

 

 

 

오늘 처음으로 나도 한장 흔적을 남겨 본다

 

 

 

사진 우측으로 아리랑릿지 와 쓰리랑릿지가 보인다

 

 

 

 

 

 

 

 

 

 

 

 

 

 

 

영축산에서 내려와 신불재로 향한다

 

 

 

 

 

 

 

단조산성은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의 북상을 저지하기 위해 의병장 신광윤을 중심으로 의병들이 축조한 산성이라고 전한다. 붉을 단(丹), 새 조(鳥)자를 써서 단조, 즉 단조는 봉황(鳳凰)을 뜻하고 산의 지형적 특성이 마치 봉황의 머리를 닮았다 하여 단조산성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단조산성은 너무나도 슬픈 사연이 전해져 오는 곳이기도 하다. 왜군들에게 쫓긴 당시 의병들의 처절한 역사의 숨결이 스며있는 곳이다. 왜군의 기습공격으로 끝내 성을 빼앗기자 의병들은 남쪽으로 후퇴하여 지금의 시살등에서 왜군에게 무수한 화살을 쏘면서 저항했지만 모두 장렬하게 최후를 맞이한다. 시살등이라는 이름도 당시의 사건으로 말미암아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사진 좌측 중간부 희미한 띠가 단조성 흔적이다

 

 

 

 

 

 

 

 

 

 

 

 

 

 

 

 

 

 

 

 

 

 

 

멀리 뒤쪽으로 지나온 영축산과 우측 끝 부분 희미하게 죽바우등도 보인다

 

 

 

 

 

 

 

 

 

 

 

아리랑릿지와 쓰리랑릿지가 가깝게 보인다

 

 

 

전투 식량으로 많이 늦은 점심을 먹는다

 

 

 

뒤쪽 신불재와 신불산 정상

 

 

 

우리는 신불산 까지는 가지 않고 신불재에서 좌측으로 내려 간다

 

 

 

 

 

 

 

조금 지나면 등산객들로 온 산이 울긋불긋 할 것이다

 

 

 

맨 뒤쪽으로 지나온 능선이 까마득하게 멀리 보인다

 

 

 

뒤돌아 본 영축산 방향 푸른 하늘과 억새밭이 잘 어울린다

 

 

 

신불재에서 바라 본 신불산 공룡능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