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지리산 삼신봉 2015-08-13

몰라! 2015. 8. 13. 22:37

 

 

오늘은 지리산 청학동 뒷산 삼신봉으로 가기로 하고 무거로타리에서

아침 5시에 출발 하기로 했는데 이 녀석이 약속을 어겨서 6시가 다 되어서야 출발 하게 되었다

늦었지만 다행히 평일 이른 아침이라 도로 사정이 좋아 신나게 달리니 2시간여 만에 청학동 삼성궁 앞에 도착 할수 있었다

주차장에서 간단하게 컵라면 과 태화루 한병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들머리를 찾다 삼성궁 문지기에게 물으니 여기서는 산으로

갈수가 없다고 청학동 탐방 지원쎈터 쪽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나중에 하산 하면서 안 사실이지만 우리에게 가르켜 준 그 사람 엄청 씹게 되었다

예전에는 삼성궁 안쪽으로 올라 가거나 내려 왔는데 혼잡스러우니까 대형 주차장 쪽으로 해서 우회로를 최근에 만들어 놨는데 

나쁜X X 바로 옆에다 두고 삼성궁 근처에는 길이 없다고 했다

 

 

나도 그렇고 또 많은 사람들이 청학동 이라고 하면 뭔가 특별 한 무엇이 있을거라 생각 한다

그러면 청학은 무엇이고, 청학동은 어디인가? 하는 궁금증 때문에 인터넷을 뒤져 봣더니.......

 

청학은 날개가 여덟이고 다리가 하나이며 얼굴이 사람같이 생겼다는 상상의 길조이다. 이 새가

울면 천하가 태평해 진다고 하여 옛날부터 사람들은 청학이 사는 청학동을 신선이 살고 있는

이상향이라고 믿어 왔다.

 

고려시대 이인로는 파한집에서 지리산 안에 청학동이 있으니 길이 매우 좁아서 사람이 겨우 통행

할 만하고 엎드려 수리를 가면 곧 넓은 곳이 나타나는데 사방이 모두 옥토라 곡식을 뿌려 가꾸기에

알맞고 청학이 그 곳에 사는 까닭에 청학동이라 부른다고 했으나 청학동을 끝내 찾지는 못하였다고

고백했다. 김종직은 피아골을, 김일손은 불일폭포를, 유운용은 세석고원을 각각 청학동이라고 보긴

했지만 모두들 확신하지는 못했다..... 즉, 옛 어르신들도 가본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삼신봉(三神峰)은 지리산 남부능선 한가운데에 우뚝 솟아 동으로는 묵계치를, 서쪽으로 생불재(상불재), 남으로는 청학동을, 북쪽으로는 수곡재와 세석을 이어주는 사통 팔달 요충지로서의 역활을 한다. 청학동 마을에서 삼신봉을 바라보면 왼쪽부터 쇠통바위, 가운데는 내삼신봉, 오른쪽이 외삼신봉으로 세개의 봉우리가 눈에 들어온다. 이 중 내삼신봉이 해발 1,354m로 가장 높지만 통칭 삼신봉은

이보다 해발이 낮은 1,284m로 외삼신봉을 대표해 부른다. <한국의 산하에서 발췌>

 

 

대다수의 등산객들은 탐방지원쎈터~삼신봉~내삼신봉(삼신산정)~상불재~불일폭포~쌍계사 쪽으로 가지만

우리는 차를 가져 왔기 때문에 탐방지원쎈타~삼신봉~내삼신봉~상불재~삼성궁 으로 돌아오는 원점회귀 코스다 

 

 

탐방지원쎈타를 지나서 뒤쪽 붉은 간판 우측으로 올라가면 된다

앞서 가는 친구를 불러 세워 한장 찍어 본다

 

 

하늘 높이 솟은 나무 그늘 아래 고요한 아침의 숲길이 싱그럽기만 하다

하지만 어제 내린 비로 습한데다 계곡이라 바람 한점 없어 이내 땀이 줄줄 흘러 내리기 시작 한다

 

 

주차장에서 급하게 먹은 컵 라면과 태화루 때문인지 속이 거북한게 온 몸에 힘이 빠지고 먹은 거

억지라도 반납 하고 싶은 생각과 더불어 산행이고 뭐고 다 때려 치고 그냥 쭉 뻣어 버리고 싶은 상태다

친구가 얼굴 혈색이 하얗게 변했다고 하고............

 

이 쪽은 지리산 주능선과 거리도 멀고 특히 오늘이 평일이라 등산객을 만날 확률은 거의 희박 할 듯 하고

 

 

삼신봉 정상 부근 이정표

 

 

삼신봉 정상에서 지리산 종주 능선을 바라 보고 있는...............

 

 

삼신봉에서 영신봉으로 이어지는 능선과 능선 곳곳의 고사목들이 여기가 지리산이라는 것을 더욱 실감나게 해 준다

운무가 찧게 끼여 지리산 종주 능선이 보이지 않아 아쉬움이 매우 커다

 

 

날씨가 맑으면 여기서 지리산 종주 능선을 조망 할 수 있는데 그것이 삼신봉 산행의 큰 묘미다

 

 

오늘은 아무리 쳐다 보고 있어도 천왕봉이 얼굴을 보여 줄 것 같지는 않을 듯 하다

언젠가는 이 능선을 따라 세석대피소 까지 가 보는 것도 좋겠다고 약속 인 듯 아닌 듯 이야기를 나누고..........

 

 

 주 능선을 보이지 않고 그냥 인증샷이나 찍고

 

 

뒤집힐 듯 하던 속도 어느 정도 회복 되고........

 

 

내삼신봉으로 가는 길 어제 내린 비로 이끼가 푸르름을 더 한다

 

 

내삼신봉 직전

 

 

내삼신봉(삼신산정)

 

 

보이지는 않지만 확연히 회복된 내공과 더불어 정상을 되찾은 혈색

 

 

지나온 삼신봉과 끓임 없이 왔다 갔다 하는 운무

 

 

앞으로 가야 할 상불재 방향

이 곳은 고도가 높아서 그런지 바람이 선선 하고 나뭇잎을 보고 있자니 어느새 가을이 성큼 다가와 있다는 느끼게 한다

 

 

이 녀석은 운무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종주 능선 과 천왕봉이 못내 아쉬워 계속 쳐다 보고 있다

 

 

내삼신봉 바로 아래 상불재 가는 중

 

 

내려 온 길 뒤돌아 보고

 

 

이 녀석은 무슨 멧돼지과 인지 쉬다 움직이기만 하면 거의 줄행랑 수준으로 앞서 가는 것을 같이 가자고 불러 세웠다

 

 

송정굴

굴 앞을 자나면 굴 위쪽 바위에 올라 갈수 있다

하지만 정상 등산로가 아니기에 약간의 위험도 감수 해야 한다

 

 

동굴 천정에서 물방울이 뚝뚝 떨어 지면서 시원하다

 

 

동굴 상부에 자라고 있는 구상나무

 

 

다시 내려 와서 품 잡고

위에서 내려 오다 바위에 부딪혀 무릎 부위 내 천연가죽 벗겨져서 피 봤다

 

 

친구 녀석도 한 장

 

 

둘 다 눈을 어디다 두고 다니는 건지

동굴 들렀다 진행 방향 등로 찾느라 이리 저리 헤멨다

알고 보니 동굴 바로 직전에 좌측으로 고속도로급으로 큼지막 하게 리본도 주렁주렁 붙어 있었다........ㅋㅋ 바보와 그 친구

 

 

마치 칼로 뻬어낸 듯이 까마득한 높이를 자랑 하는 암벽

 

 

송정굴을 지나 시원한 숲속길을 한참을 걷다 보면 쇠통바위가 나온다

 

 

분명히 여기는 위험 해서 올라 가지 말라고 안내문도 있고 간혹 너 처럼 말 안 듣는 사람이 있어서

목책까지 설치 하고 로프까지 덤으로 해 놨는데 너는 왜?

굳이 그곳으로 기어이 기어 올라 가는 냐고?............

 

 

하지 말라는 건 참 잘 하는.............

 

 

말리는 척 하면서 할 건 다 하는.............

 

 

바위 상부로 이동 중

이 아래는 터널 형태로 뻥 뚫려 있다

 

 

쇠통바위 아래서 널부러져 휴식 중

 

 

쇠통바위

저기 구멍에 딱 맞는 열쇠를 찾아 맞추면 천지가 개벽 한다는 전설이 있다고...............

 

 

점심 준비 완료

꼴뱅이 + 갯뻘문어 무침 맛은 먹어 보지 않았음 묻지를 말아라

 

 

쇠통바위에서 아래로 바라 본 모습 족히 30~40여 미터는 될 듯 하다

 

 

쇠통바위에서 등산로 쪽으로 내려오는 길

 

 

여기가 상불재

여기서 직진 하면 불일폭포와 쌍계사

우리는 좌측 삼성궁 쪽으로 내려 간다

 

 

잠시 쉬면서 세수와 족욕 했던곳

물이 그리 깨끗하지 않고 주위에 모기가 엄청 많아 오래 머물기에는 좋지 않앗다

 

 

시간은 오후 3시 지만 숲이 우거져 어두컴컴 하다

 

 

삼성궁 바로 옆 계곡

 

 

삼성궁 입구 좌측 대형버스 주차장 쪽으로 하산 완료

문지기 녀석이 삼성궁 근처에는 등산로가 없다고 했는데 삼성궁을 우회해서 계곡을 따라 새로운 등산로가 나 있다

 

 

청학동(靑鶴洞)

[개설]

청학동이라고 하면 예로부터 전해 오던 도인(道人)들의 이상향을 말한다. 전국의 여러 명산에는 청학동의 전설이 남아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청학동의 위치는 지리산에 있으며, 예로부터 천석(泉石)이 아름답고 청학이 서식하는 승경(勝景)의 하나로 간주되었다. 오늘날 현존하는 청학동은 지리산 청학동의 유래가 존재해 오던 곳에 자리잡고 있다.

이곳은 지리산 삼신봉(三神峰) 동쪽 능선 아래 해발 800m 고지인 지리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작은 마을이며 도인촌으로, 특정 종교의 신도들이 집단적으로 거주하는 종교취락의 성격을 지닌다. 청학동의 가장 큰 특징은 주민들의 종교적 표상에서 잘 나타난다.

청학동 주민들은 모두 강대성(姜大成, 1898〜1954)이 창시한 유불선갱정유도교(儒佛仙更定儒道敎)라는 신흥종교를 믿고 있으며, 한국전쟁 이후에 이곳에 모여들어 마을을 형성하였다. 갱정유도는 단군계 신흥종교로 일명 일심교라고도 하는데, 그 정식 명칭은 ‘시운기화 유불선동서학 합일대도 대명다경 대길유도 갱정교화일심(時運氣和儒佛仙東西學合一大道大明多慶大吉儒道更定敎化一心)’이다. 남원에 본부를 두고 있으며, 지리산 청학동에는 수련소를 설치해 놓았다.

갱정유도의 사회적 표상은 집단생활을 한다는 것 이외에도, 신도는 한복에 푸른 조끼를 입고 남자와 여자가 모두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고 길게 늘어뜨린다는 점이다. 성인이 되면 옛 선비들처럼 상투를 틀고 큰 갓을 쓰고 도포를 입는다. 자녀들은 학교에 보내지 않고 서당에 보낸다. 특히, 현대문명에 대하여 매우 비판적이라는 점이 갱정유도의 큰 특징이다. 또한, 주색초(酒色草)를 엄격히 금하나, 때로는 허용하기도 한다.

 

 

티브이에도 자주 나오는 유명인이 운영 하는.............

 

 

[형성 및 변천]

지리산 청학동이 문헌에 등장한 것은 이인로의 『파한집(破閑集)』으로 노인의 구전에 근거한 것이었다. 청학동에는 조선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하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때는 지원 병사들이 청학동에 들어와 거주하였고, 계속해서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 100가구 정도가 살았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의 감시를 피해 사람들이 이주해오기도 하였다. 광복 이후에는 공산주의자들이 거주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청학동에 살던 주민들이 퇴거당하기도 하였다. 한국전쟁 이후 외부와 교류를 차단한 채, 종교 신봉자들이 모여 독특한 생활방식을 유지해 오고 있다.

 

그 유명인이 운영 하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현황]

주민들은 논농사와 밭농사 이외에도 약초·산나물·벌꿀·가축사육 등으로 생계를 유지해 가며, 관광객들을 위한 전통 음식점을 경영하기도 한다. 가옥은 모두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초가 형태를 띠고 있으나, 각종 문화시설, 예컨대 텔레비전·라디오·전화·세탁기 등이 갖추어져 있다. 놀이문화는 우리나라 전래의 민속놀이가 모두 행해지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청학동 주민들은 다소의 갈등을 겪고 있다. 우선, 세대간의 갈등이 두드러진다. 젊은층과 노인층 간의 갈등이 가끔씩 표출되기도 한다. 또한 문화적 갈등이 존재한다. 각종 문화시설과 전래의 생활도구가 혼재해 있으며, 외지인들의 울긋불긋한 여행용 옷차림과 흰 한복이 섞여 있다.

따라서 도인들의 이상향으로서 청학동의 이미지가 원래의 모습을 잃어 가지 않을까 우려되고 있다. 특히 현대에 와서 청학동을 형성한 갱정유도인들이 매스미디어에 의해 알려지고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의 관광정책에 의해 관광지 개발이 촉진되면서 마케팅 장소로 탈바꿈하였다. 이에 따라 청학동의 장소 정체성이 변화하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에 오기전에 가끔씩 우리 집에 있는 아들 녀석 방학 기간에 여기 예절 학교에 보내서

정신 교육 좀 시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오늘 여기 왔다가 생각을 고쳐 먹게 되었다

더 이상 내가 생각 하던 예절과 심신수련의 청학동이 아니라는 것을.............

여기 분위기로 봐서 여기 청학동에는 더 이상 전설속의 청학이 사는 이상향의 고향이 아니라 

어느 유명 관광명소에 와 있는 듯 한 느낌이 깊이 느껴 진다